2010

04월

28

가계부 속의 남자.

젊다는 말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나이.
무엇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나이.
그리고 그런나이가 오기 전에 노력하리라 다짐했던 때가 추억이 된 나이.

요즘 나는 10대의 복잡미묘함보다 더 날카롭고 정제되지 못하게 정서적으로 비뚫어져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륜이라는 이름에서 얻은 믿음이 만들어낸 일종의 불신 때문이기도 하다.

중언부언은 글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던져넣기로 하고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지난 주 중에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보는데 IMF의 위기를 넘기고 성장한 중소기업이 방송되고 있었다.
스튜디오에 나와있는 사원 중 한 명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아내 몰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회사에 자금으로
사용을 했다는 말을 하는걸 보았다.
당사자의 부인은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는 일이고, 방송을 보면 처음 아는 내용이라는 말을 했다.

식사 중간에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부장님. 만약 저렇게 할 생각이 있다면 부인에게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부장님은 물론 다른 동료들도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말을 했다.
마치 ‘ 아니 이런 큰 일 날 사람이 다 있나’ 하는 늬앙스의 표정과 말투와 함께.

“저 사람이 아내에게 말했다면 담보도 못받고 회사도 관두라고 했을거고 지금의 이사가 되지도 못했을 거에요”
동료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아내와 의논을 하면 안된다.”

안그래도 요즘 복잡한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답들이었다.

그 후로 며칠간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주변에자영업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생각나기 시작했고 그 사람들의 운영방법이나 가정에 관해 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는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생각이 났다.

아차 싶은것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재차 확인을 위해 오늘 사무실에서 회사 대표에게 여러가지를 물어 보았다.
회사운영의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정에서 의논을 하는지.

“대출 받았어 라고만 이야기 해요”
얼마를 받았는지, 왜 받았는지, 현재 회사 상태가 어떤지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안한다는 것이다.
결국 회사를 운영하면서 통보가 다였다. 그것도 대충의 통보.

아차 싶었던 그것, 의논을 해야 할 것과 내가 결정해서 밀고 나가야 할 것..
나는 그것이 아내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생각이 났다.
지금 원망해도 나중에 잘 되면 그걸로 끝이라는 말.
의논해서 결정하면 여자가 나중에 같이 책임을 느낄거라 생각하냐는 말.
어차피 지금 안되서 나중에 원망들으나 말아먹고 나중에 원망들으나 똑같으니 독단적으로 하는게 낫다는 말..
나는 그것이 정말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지금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여자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당장 내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문제다.
자신이 적어내려가는 가계부에서 손실이 일어나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원한다.
나는 지금 쉬고 싶고 쓰고 싶다.
아껴도 안되고 모아도 안되는데 잘 될지도 모르는 일을 위해 대출을 받고 모험을 하자고?
여자의 현실은 망가질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남자를 가계부속에 가둬버린다.

남자는 도전적이다.
되든 안되든 판단을 하면 벌려보아야 한다. ( 도박이나 주식같은 걸 이야기하는것이 아니다. )
실패하면 다시 할 각오를 다진다.
여기에 들이대는 아내의 가계부는 살생부 처럼 보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화가 없다면 여자는 책임을 회피한다.
그것은 본능이다.

어차피 져야할 책임이라면 의논할 필요 없이 저지르고 욕먹으라는 말.
아내와 의논하여 결정이 날 수 있는 것은 아내의 가계부에서 허락하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일이 암울하거나 오늘과 똑같다면 저질러 버리라는 대단히 책임감이 없어보이는 그 말.
그것은 오늘보다 나아진다면 ‘욕은 먹지 않게 된다’는 상당히 희망적인 메시지로 내앞에서 돌변하고 있다.

‘적어도 중대한 일이라면 의논을 해야 부인을 존중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이 존중하는 걸 부인이 알아나 줄 것 같소?’
‘그건 내가 존중을 안하기 때문에 그런거죠’
‘힘들면 존중하지 않는게 여자요. 나중엔 원망하고 무시나 하지’

예전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당시에는 그런 대화에 적잖이 기분이 언짢았는데 오늘은 조심해서 곱씹고 있는 지난 대화다.

나는 결정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때로 결정이라는 것은 의논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

지갑이 두꺼워지고 몸이 편해야 그것을 다 이해하고 행복하게 된다는 누군가의 농담..
아무리 잘해줘도 여자는 모르고 더 잘해주길 바라고 자신을 사랑하는 기준을 선물의 금액으로 판단하는,
그래서 행복을 강요하지 말고 돈만 많이 벌어주면 다 된다는 누군가의 그 농담..

갑자기 머리가 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주 TV에서 본 그 상황이 내가 진실이라 생각했던 모든것에 잠시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같이 함께 살려고 하지만
어쩌면 다르기 때문에 따로 떨어져 있는것이 나은것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랑 있어서 행복해”라는 여자의 말은 남자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위로하는 말이라는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여러번의 기회를 번번히 놓친 허탈함이 사춘기의 정서적 우울함에 한동안 나를 빠뜨려 놓는다.
뒤를 돌아보니 갑자기 집구석이 거지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