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9월

22

말, 사대주의, 문화, 기본.

4학년 아들과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가서 들러보다가 아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저기에 있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싸게 판다고 적혀있네”
“근데 왜 우리말로 하면 되는데 어렵게 영어로 적어놨어요?”

말이라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그 나라와 민족의 문화를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말이 영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한글로 영어발음 그대로 적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양파 맛 과자는 포장지에 한글로 ‘어니언 맛’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출발한 말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그 뜻을 전달하기에 유리한 것들도 많고, 제품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세상은 기술의 발달로 더욱 가까워졌고, 정보의 공유는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말을 굳이 외국말로 바꿔가며 사용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더 빨리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재하는 우리말을 버리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봅니다.

줄이 긴 맛집은 “손님. 지금 자리가 없어서 한 30분은 웨이팅하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물건은 꼭 바이 해야겠는걸요.” 같은 글도 보입니다. 프레임에 갇혀서, 어썸, 머스트 해브 등 멀쩡한 우리 말 놔두고 도대체 왜 영어로 우리의 말을 망가트리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말은 서로 다퉈가면서 사용합니다. 우리 말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면 잘못된 말이나 문법 등을 꼭 찾아내어 시비를 걸거나, 기자나 제대로 하라는 댓글 등 우리가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는 중심은 다 내버리고 ‘너나 잘해라.’ 식의 비아냥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것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계화요? 그렇다면 그냥 미국의 속국이나 선진국의 속국이 되도록 외교를 해야 하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창씨개명.

명함을 받으면 자신의 이름과 함께 반대쪽은 영어로 된 이름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꼭 미국식 이름을 만드는 걸까요? 외국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외국 이름을 만드는 것에 어색함이 없습니다. 누군가 듣기에 더 좋은 영어 이름을 찾아내려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티브 김, 제시카 한, 제프리 박…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게 카프리 썬이라고 짓지 그러셨어요.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하였습니다. 친일파(라 쓰고 매국노라고 읽습니다.) 외에 많은 사람은 강제로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바꾸는 자발적 창씨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움.

작은 머리, 쌍꺼풀 있는 눈, 갸름한 턱, 큰 가슴, 긴 다리, 흰 살 등 보통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거의 서양입니다. 우리는 동양인이고 한국인인데요. 물론 사진을 보면 그들이 더 예뻐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전체 키에서 하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체보다 더 길어서 훤칠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결혼할 때, 서양 여자들과 결혼하지 못해서 마지못해 한국 여자들과 결혼하는 건가요? 서양이 비율적으로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우리에게 그들은 왠지 어색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들 우리의 아름다움을 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동양인을 볼 때 생각하는 동양적 아름다움은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각자 자기 문화와 지역의 아름다움이 달라서 그럴 수밖에 없죠. 왜 다들 쌍꺼풀을 원하고 오뚝한 코를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큰 눈만 예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움을 왜 갖다 버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어보다 영어를 모르면 부끄럽습니다.

저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공부하던 세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식 교과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더군요. 심지어 교장의 재량으로 체육 시간을 줄이고 한자 공부도 시킵니다. 사회에서도 누군가가 생소한 영어를 사용하면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정말 부끄러워하면서 조심스레 묻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 키노트에서 모바일을 모블이라고 발음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여러 블로그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모바일이라 적지 않고 모블이라고 적힌 블로그가 정말 많았습니다. SNS도 마찬가지였고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모블이라고 적힌 것을 보면서 좀 놀랍기도 했습니다. 시리(siri)가 처음 발표되던 때에는 시리라고 적지 말고 시어리라고 적어야 한다는 글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발음했기 때문에 그것이 더 정확한 것이라고 하면서요. 이번 달 말에 출시될 예정인 앨캐피탄은 앨캐피탠이라고 적어야 한다는 글이나 댓글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말이 아닌 외국어에는 그렇게 발음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정작 우리 말은 어떤 대접을 하고 있나요? 얼마나 빨리 말이 망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필요 이상의 말 줄임은 기본이고, 그런 것을 모르면 모른다고 놀립니다. 요즘 아이 중 ‘정말 좋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아이들은 보기 드뭅니다. ‘완전 좋다’라고 말을 하죠. 문법상으로는 맞지만, 어법상으로는 틀린 말들이 유행을 넘어 파괴의 수준으로 사용되어도 거기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길에서 아이들에게 “완전 좋지?”라고 말하는 엄마 아빠도 자주 봅니다. 저희 아들도 언제부터인지 ‘그다지’ 라는 말을 ‘그닥’이라고 말하더군요. 맨 처음엔 잘 못 들은 줄 알았는데 또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틀린 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말은 파괴되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게 유행이면 옳든 그르든 마구 사용하면서 영어 발음 하나에는 그렇게 신경 쓰고 따지고 들고 모르면 부끄러워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데 두 여자가 “좀 있다가 브런치 먹자”고 말하면서 ‘끼니’라는 말은 정말 촌스럽지 않으냐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늦은 오후에 브런치라는 그 나라의 신조어, 우리나라로 치면 예전에 유행했던 아점은 괜찮고, 끼니는 부끄럽다는 그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로 사대주의입니다.

말은 그 나라와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나타냅니다. 그것이 망가지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남의 말을 모르는 것이 부끄럽다면 분명히 그 사회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 말이 참 많습니다. 이렇게까지 세세한가 싶을 정도로 우리말은 참 풍부합니다. 그 아름다운 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고 아픈 마음이 듭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제가 어릴 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혼은 갈수록 늘고, 툭하면 헤어집니다. 그리곤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며 그전에 내뱉던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나 가볍게 내뱉습니다. 사랑한다고 결혼했는데 간통죄는 폐지되었습니다. 사회는 갈수록 메말라 가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만 사랑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혼한 사람들은 이혼남, 이혼녀가 아니라 돌아온 싱글이라고 포장합니다. 우린 언제든 좋으면 사랑한다고 하고 싫어지면 다시 결혼 전의 미혼남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면 그렇게 꾸며지길 바라기 때문에 그들을 그렇게 부르고 이해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10대 때 문제아들이 주로 사용하던 욕은 지금은 청년들도 스스럼 없이 내뱉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말이 너무 거칠어서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유행하는 말은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해갑니다. 개좋아, 개웃겨, 심지어 이성을 비하를 넘어서 저주와 증오로까지 보이는, 예로 적을 수도 없을 정도의 말을 댓글들에서 심심찮게 보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말들을 합쳐서 누군가를 공격할 용도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뜻을 알면서 그렇게 스스럼 없이 사용할 수 있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김치년이라는 말은 정말 양반 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말은, 그리고 그 말이 사용되는 곳에 알맞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사회를 남겨주게 될까요?

“한글 촌스럽다”…거리 점령한 외국어 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