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3월

20

하드디스크 하나에 불안해 하는 삶이 되다.

저는 프로젝트 자료부터 가족들 사진, 음악, 동영상 등 거의 모든 데이터를 나스(NAS)에 넣어두었습니다. 맥에는 사용 중인 앱과 아이튠스에 들어있는 음악, 애퍼처의 사진, VMWare 정도만 있습니다. 앱 안에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는 앱들 외에는 대부분 나스에 데이터를 두고 있죠(그래도 맥은 250Gb 정도 용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애퍼처의 사진이나 아이튠스의 음악 등은 따로 나스에 폴더형식으로 구성해 두고 있고, 타임머신도 나스에 돌리고 있어서 맥이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포맷할 필요 없이 불과 몇 분에서 몇 십 분 전에 사용하던 맥 환경 그대로 복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나스 장비는 두 개의 HDD가 들어갑니다. 하나는 데이터 보관용, 하나는 백업 및 타임머신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주, 또는 일정 기간에 중요한 데이터들을 백업용 HDD에 자동으로 백업합니다. 외부에서도 늘 접근할 수 있어서 따로 드랍박스나 카피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나스의 HDD에 문제가 생기면 메일로 연락이 오고, 문제가 발생한 HDD를 교체하면 됩니다. 자료가 언제 날아갈지, 맥은 언제 문제가 생길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얼마 전 갑자기 나스에서 비프음이 나서 확인해보니 백업용 HDD가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얼른 분해해서 점검하고 켜보니 다행스럽게 다시 인식되더군요. 자료도 모두 살아있었습니다. 왜 갑자기 인식이 안 됐는지는 몰라도 다행이었습니다.

두 개의 HDD가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는 일은 정말 드물 것입니다. 천둥번개로 과전압이 흐르거나 정말 둘 다 동시에 수명이 다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실제로 10여 년 전에 천둥번개로 모든 전기 장비가 다 꺼지고 플레이스테이션 2가 고장 난 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경험도 매우 드문 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hdd_platter

그런데 정말 불안하더군요. 나스의 백업 HDD가 이상 없는 것을 확인하는 몇 십 분 동안 갑자기 데이터 HDD가 고장 나고 맥의 HDD가 고장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가족사진이나 동영상, 프로젝트 파일은 모두 나스에 있는데 고장 나면 어떡하나, 3중 백업할 수 있도록 더 많은 HDD가 들어가는 나스 장비를 알아봐야 하나, 갑자기 번개라도 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자동으로 백업도 되고 타임머신이 되는 장비를 사용하고 그 편리함에 젖어 있었지만, 그 편리함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자 초조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녀가 사회에서 활동하는 시대가 되면 더 많이 변해있을 것입니다. 기기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하드웨어 외에는 모든 것이(심지어 OS까지도) 클라우드로 이루어질 수 도 있을 것이고, 아마 콘솔만 들고다니는 시대가 되겠죠. 좀 더 빨리 발전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웨어러블과 사물인터넷으로 화면을 본다는 개념이 없어질 것입니다. 콘솔이라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시계를 차거나 안경을 낄 것이고, 공각기동대 처럼 뇌가 네트에 직접 연결되는 시대가 될 것이고요. 물론 베리칩 같은 것들이 아예 아이들이 태어날 때 몸에 심겨질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시신경을 통해 자료들이 보여지고 체감도 가능할테니 웨어러블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지고 사람 자체가 콘솔이 될 것입니다(전 그런 시대까지 살고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나의 것’ 이라는 개념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 보존이 될 수 있을까요? 내 생각이 온전히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음악도 구매의 개념이 아니라 구독의 개념이니 앞으로는 더욱 그런 시대가 될 것입니다. 친구들과의 사진, 영상도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게 되겠죠. 소위 저같은 노땅들이나 지금처럼 소유하려는 것이고, ‘나의 것’을 ‘나의 것’에 보관하고 싶어하고 몇 십년 후에는 사라질 것입니다. 정보격차는 더욱 심해지게 되고 다시금 군림하는 자와 온전한 몸(?)을 가진 피지배 계층이 되고, 그 격차는 좁혀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는 이 모든 것들이 통제되고 보관되는 인공지능과 스토리지 센터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국가가 공정하고 정직하게(?) 공공재로서 운영을 할지도 모르고, 기업들의 각종 서비스들은 지금처럼 몸 안의 칩을 통해서 제공될 것입니다.

만약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기억이라 불릴(?) 데이터들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디지털은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보관방식이 아닙니다. 신뢰성 또한 높지 않죠. 우리는 어쩌면 편리함이라는 것으로 인해 더욱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긴 힘들지만 왠지 가슴 속 응어리 처럼 뭔가가 체할 듯 걸려있는 느낌은 저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친가에 있는 사진첩.

제 어릴 때 사진은 친가에 가야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흑백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다 컬러 사진이 퍼졌고 30대 초반까지 사람들의 기록은 인화된 사진이 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진, 그리고 색 바랜 그 사진은 정말 그 거리만큼이나 보기가 어렵습니다. 필름이 없으면 다시 뽑을 수도 없고 내 장롱 속에 있지 않다면 당장 만져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어느 한 순간에 모두 날아갈 위험은 적습니다. 그러고 보면 디지털 사진으로 가득 찬 아들의 사진도 나스에서 자주 꺼내어 보는 편이 아닙니다. 우리는 편리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편리함을 아주 가끔 사용하면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러면서도 더 잃어버리기 쉬운 디지털의 약기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 또한 그럴 것입니다. 이미 필름 카메라는 만져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아이폰과 DSLR로 백업에 의지하여 디지털의 가장 큰 장점인 복사에 의지하고 있으니까요.

기술은 옛날 보다 발전했다고 하지만 정작 자료를 보관하는 매체는 과거보다 못합니다. 동굴 벽에 새겨진 상형문자는 아직까지도 전해지고 있고 원래 내용을 조작하지 못하지만 파피루스, 종이를 거쳐 디지털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모든 것은 더 빠르게 사라지고 진위 여부를 알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이미지 저장방식이 나오면 앞으로 이 데이터가 담긴 HDD가 있더라도 열어볼 방법이 사라지겠죠. 또한 그 HDD마저도 자력이 다하는 날이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CD나 블루레이 등의 ODD는 HDD보다도 더욱 보관기관이 짧은 매체입니다. 기술이 더 발전한 미래의 어느 날, 과거의 디지털 이미지는 볼 수 없게 되더라도 아주 희미한 사진, 그림, 책이 남아있을 확률이 더 클 것입니다.

돌아볼 수 없는 타임라인.

트위터와 페이스북같은 SNS에 남긴 글과 댓글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검색기능이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탈퇴한다고 해도 휘발성이 단점인 디지털은 끊임없이 백업을 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합니다. 덕분에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글을 삭제하더라도 누군가가 이미지를 퍼가거나 글을 퍼가서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일도 많습니다. “어? 이 고양이 사진 전에도 봤던 건데” 라고 말하는 것은 누군가가 다시 보여줘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처음인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무한 복제, 무한 전파를 통해 디지털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잊혀질 권리라는 것도 그래서 나왔지만 이제는 내가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CCTV를 통해 내가 하루종일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절대 잊혀지지 않고 절대 지울 수 없는, 마음만 먹는다면 편집도 가능한 세상에서 오히려 내가 남긴 흔적은 찾기 힘들어집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집단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찾지도 못하는 흔적을 모아 증거를 만들 수 있는 세상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늙은 사람이 맞나 봅니다. 그래도 내가 쓴 글을 돌아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고, 지울 수 있는 블로그를 더 좋아하는 걸 보면요. 물론 이 글이 그렇다고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검색봇은 지금도 제 블로그를 방문하고 있고, 누군가는 글을 가져다가 자신의 글인 양 올려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식이 더 많아졌지만 온라인은 더 험악해집니다. 세상이라고 다른가요. 참치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진 바다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지구 온난화가 거짓말이라는 기사는 SNS를 통해 퍼나르고, 지구는 안 망한다는 것에 희망을 거는 것이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배우지 않아도 언제든 접속해서 알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고, 우리가 우상으로 만든 지식이 넘쳐나더라도 우리의 양심은 영양실조에 걸려 간신히 숨만 쉴 것 같습니다.

허상과 실상.

지폐라 불리는 돈은 실제로 가치가 없는 종이입니다. 금본위제를 통해 그 지폐를 가치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니까요. 역사적으로 이렇게 동전과 지폐를 통해 무너진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결국 사람들은 허상을 쫓아 그렇게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도 금본위제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지금 무너져도 사실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비트코인 같은 허상의 돈이 나왔습니다. 이미 우리는 지금도 실제 금을 만지지 않으면서도 그 가치가 있다고 믿는 돈의 노예입니다. 이미 돈 보다 카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면서 내 것이라 인식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카드조차 사라지고 몸 안의 칩에 저장된 허상의 숫자를 쫓는 시대가 될 것이고요. 더 많은 0이 붙길 바라면서 그것에 대한 존재는 믿을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논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허상으로 통합되어가는 시대입니다. 돈도 그렇게 되어가고, 종교도 그렇게 만드려고 합니다. 사람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위대한 것이 없다는 인본주의가 급격히 퍼져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그런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이야기 하면서 실제 다양성을 모두 파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개독이라 욕하는 저 역시 죽어 마땅한 것이 당연한 시대가 올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선지서를 읽는 것 같은 위험한 시대에 저는 이제 옛날사람이 되어갑니다. 디지털의 황홀함을 맛보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갈수록 옛날이 좋아집니다. 내 자리에 있는 HDD, 내 자리에 있는 모니터, 내가 올린 글을 볼 수 있는 저장공간.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는 로봇이 나오기 시작한 시대에 앞으로 우리는 사람보다 로봇과 대화하고 나만 알아주는 로봇을 선호하는 세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에 살고 있다면 그것에 열광하겠지만, 저는 지금의 아날로그가 남아있던 시대에 태어난 것이 행복합니다. 공주님과 아들, 그리고 그들과 다투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마지막 사람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스 HDD에 문제가 생기니 이래저래 두서없이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삶,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불안에 쌓여 사는 삶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닌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습니다.

  • 마력남

    2중 3중 백업할수록 백업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안감도 증가하죠… 관리포인트도 늘어나고…
    디지탈이 점점 증가할수록 사람은 진정 편해질까요 아닐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

    • 페이퍼북

      좋은 말씀이시네요. 디지털은 편리함을 빼고나면 마약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두가 파괴되는 시대가 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편리함이라는 쾌감에 중독되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과거 이집트가 세계의 강대국이던 시절에 이스라엘 같은 유목민들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멸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권력층이 만들어 놓은 국가 시스템을 통해 사람을 통제하고 다루려면 농경적인 구성이어야 유리했는데, 유목을 하는 민족은 그런 시스템에 집어넣고 다루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유목민에 대한 멸시와 증오로 나타나게 된 것이죠.

      앞으로 디지털도 그런 식으로 훌러 갈 것이라고 봅니다.

  • 소유가 늘수록, 인생은 불행해지고,

    비울수록 행복해진다.

    글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행복하시길~